Elluda board
게시판

소통게시판
home > 게시판 > 소통게시판
제목 중국 조직폭력배(흑사회)의 1인자 - 두월생 2탄
작성자 (elluda1)
등록일 2016-07-31
조회수 996
첨부파일
계속 이어서 두월생을 보자. 두월생은 1888년 출생이다. 그가 태어난 때는 아직까지 청왕조의 지배를 받는 시기였다.
태어난 곳은 강소성 상해현(지금의 상해 푸동신구)로 당시에는 농촌중에서도 가장 농촌이며, 가난한 지역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힐 만한 지역이었다.
 
여기서 태어난 두월성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흙수저였다. 흙수저의 정도가, 그가 2세때 친엄마가 죽었다. 그가 5살때 친아빠가 죽었다. 고아가 된 그를 먼 친적뻘되는 계모가 거두어서 키워주려했으나, 그가 8살때 그를 거두었던 계모가 납치되어 팔려갔다.
이정도면 이미 8살 이전에 다른 사람이 한평생 겪어야 될 모든 슬픔을 다 겪어봤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에서 ( 초근과 목피로 연명하며 이를 양식으로 살아가면, 섬유질을 잘 소화시킬 수 없기에 변을 볼때 정말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양친이 모두 죽고, 계모가 거두었으나 그나마 납치당하고...
 
두월생은  8살(초등학교 1학년나이)때부터 인근 지역을 떠돌아 다니며 밥을 얻어 먹는, 거지 유랑민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8살 아이가 아무런 기댈곳 없이 있었으니, 사회에서 온갖 서러움과 멸시와 천대를 받았음은 안봐도 뻔한 일이었다. 생존을 장담할 수 없었지만, 살아남았다.
 
인근지역을 떠돌아 다니며 살아남은 두월생은 이제 중학생나이가 된다. 14살. 중학생 나이가 되어서 본격적으로 상해시내로 진출하게 된다. 유랑민에 썪여서 상해시내로 흘러들어오게 된 두월생. 아주 전형적인 거지유랑난민이었다. 그런 그가 상해시내에 흘러들어와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다른 난민들이 많이 하는 기본적인 절도. 소매치기. 그리고 구걸이었다.
 
이렇게 살아가던 두월생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들어갈 나이때, 약 17세가 되었을때 그나마 직업다운 직업을 갖는데, 그것이 과일장사였다. 후에 그의 별명중에 '수과 월생'이라는 별명은 여기서 나온것이다. 고등학생 나이때 시작하여 24세때까지 계속 과일장사를 한다. 대부분 상점과 거리에서 과일을 팔지만, 두월생이 가장 많이 파는 곳은 도박장이었다. 그가 과일껍질을 엄청나게 얇게 깍아서 손님들에게 주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과일을 사는걸 좋아했다고 한다.
 
훗날에도 이것을 좋아해서, 청방의 1인자가 된후에도 손님이 오면 항상 직접 과일을 깍아주었다고 한다.
 
두월생은 운명의 전환점은 24살때이다. 어찌보면 장소에 맞게 딱딱 들어맞는다.
[8살~13살(초등학교)때 인근에서 교육받은후에, 14살~17살(중학교)때 상해시내 진출후 교육받고, 17살~19살(고등학생)상점과 거리에서 과일장사를 하면서 교육, 20살~24살(대학생)때 도박장에서 과일팔며 도박. 이로써 전 교육과정을 마친 두월생.... 그냥 혼자 생각해본것임.]
 
24살때 당시 청방의 1인자 황금용의 밑으로 들어간다. 황금용은 어떤 사람인가? 공무원이다. 공무원중에 경찰이었다.
 
중국 명대에 청방, 홍방, 백련의 세개의 조직으로 대표되던 조직은 청대에 이르러 백련은 이미 사라지고, 북방중심의 청방, 남방중심의 홍방, 사천중심의 조직으로 개략적으로 이루어졌었다. 이중 청방은 5개의 배분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大通悟学를 중심으로 여러가지로 나뉘었었다. 홍방은 조직성이 거의 없었으나, 청방은 조직성과 규율이 엄격해서, 배분이 비교적 정확히 나뉘었었다. 이런 청방의 天字辈라고 하던 이가 바로 황금용이다.
 
그가 왜 4개의 배분에도 없는 청방의 당시 1인자 였는지는 당시 상황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사실 황금용은 정식으로 청방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